환경 대재앙 이후 그린 ‘더 로드’
모아이
2010-01-04 12:35:09 │ 조회 2325
환경 대재앙 이후 그린 ‘더 로드’

지금 살겠다고 미래 갉아먹는 인류에게… 
눈 뜨고서는 못 볼 잿빛 계시록


» 영화 ‘더 로드’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의 구별법은? <더 로드>는 인육을 먹느냐, 희망의 불씨가 있느냐 두 가지라고 답한다. 그 말은 대재앙 뒤가 아니어도 유효하다. 
지난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는 말잔치였다.

지구 평균온도의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보다 2도 이내로 억제하자고 합의했지만 언제 어떻게 하자는 것도 없었다. 또 총회 당사국들은 개발도상국에 앞으로 3년간 300억달러를, 2020년까지 한해 1000억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실상은 그러든 말든 알아서 하기다. 그런 가운데 지구 표면온도는 올라가고 극지방 만년설이 녹아내리면서 해수면 상승, 기후변화, 지각변동은 심화되고 있다.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직접 인육을 먹지 않지만 이 나라들에서 배출하는 지구 온실가스 증대에 따른 인명 피해는 간접적으로 인육을 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 특히 저개발국 어린이와 여성들이 집중적으로 희생되면서, 더 이상 증식은커녕 잔존의 불씨가 가뭇해지는 불행한 미래상을 내비치고 있다.


» 영화 ‘더 로드’ 

<더 로드>가 보여주는 대재앙 이후 지상의 모습은 온통 회색빛.
햇볕이 차단된 지표는 빙하기처럼 춥고, 습기를 머금은 대기권은 끊임없이 비를 내린다. 화약과 디젤을 독점한 힘센 자들의 약탈이 지나간 뒤 도시는 텅텅 비고, 약자들은 쥐새끼처럼 텅 빈 슈퍼와 빈집을 뒤져 하루 먹거리를 찾는다.

그 단계가 지나면 악한 자들은 사람들을 잡아 창고에 가둬둔 채 살아 있는 식량으로 삼는다. 당연히 쉬운 사냥 대상은 여성과 어린이. 약자들은 사냥을 피해 숨어들고 부단히 움직인다.

<더 로드>는 ‘따뜻한 남쪽’을 찾아 길 위에 선 아버지와 아들을 통해 인류의 불행한 미래를 이야기한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두껍게 쌓인 재로 질척거리는 길을 따라 이동하면서 하루하루 연명하기. 찬 통조림 끼니에 모닥불을 피울 수 있으면 호사다. 

먼지 섞인 건초 씨앗, 썩은 사과도 허기를 끄기 위해서는 감지덕지다. 아버지와 아들은 이름이 없다. 그냥 ‘남자’와 ‘아이’다.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불없는 밤에는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는 범위, 낮에는 부단히 움직이며 나누는 대화가 존재의 전부다. 색깔은 아버지가 기억하는 대재앙 이전에만 존재하고 아들에게는 혹시 있을지 모를 미래의 꿈에 있을 뿐이다. 대재앙 이후의 불행은 땟거리를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고, 하룻밤 추위를 한모금 소주로 달래는 서울역 노숙인들한테서 편린을 찾을 수 있다.

당신은 착한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계시록과 흡사한 <더 로드>는 그렇게 묻는다. <폭력의 역사> <반지의 제왕>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비고 모텐슨이 아버지로, <앵무새 죽이기> <지옥의 묵시록> 등에서 명연기를 펼친 로버트 듀발이 길 위의 노인으로 나온다. 아이는 2007년 <로물루스, 나의 아버지>로 스타덤에 오른 코디 스밋 맥피가 맡았다. 촬영 장소는 미 펜실베이니아주의 폐탄광, 모래언덕, 버려진 고속도로, 그리고 허리케인 피해를 받은 뉴올리언스 등. 코맥 매카시의 원작소설을 읽은 이는 겹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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